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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방송역사 1부: 라디오의 시대에서 텔레비전의 부상까지 (1920년대~1950년대)

by 파파야지오 2025. 5. 25.

1. 라디오의 탄생과 대중화 (1920년대)

미국 방송의 시작은 라디오였다. 1920년 11월 2일,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에 위치한 KDKA 방송국이 미국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를 생방송으로 전하며 세계 최초의 상업 라디오 방송을 송출했다. 이 사건은 곧 미국 전역에서 라디오 방송국 개국 붐으로 이어졌고, RCA와 웨스팅하우스 같은 전자 기업들이 라디오 수신기 제조에 뛰어들면서 라디오는 빠르게 대중 가전으로 자리 잡았다. 라디오는 음악, 뉴스, 스포츠 중계, 드라마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며 새로운 오락의 중심이 되었고, 가정마다 한 대씩 보유한 ‘필수품’으로 부상했다.

라디오는 곧 광고라는 수익 모델과 결합해 방송 산업의 본격적인 상업화를 이끌었다. 기업들은 라디오를 통해 전국적 소비자에게 직접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이후 미국 자본주의 미디어 구조의 뿌리가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아모스 앤 앤디’ 같은 라디오 드라마는 스폰서와 긴밀하게 결합하며 프로그램 자체가 상품 광고의 매개가 되기도 했다.

2. 방송 규제의 태동과 공공성 논의 (1930년대)

라디오 방송이 급속히 확산되자, 방송 주파수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공공의 자산인 전파를 제한된 수의 민간 기업이 독점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이에 따라 1934년 미국 의회는 ‘연방통신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에 따라 설립된 연방통신위원회(FCC)는 방송 면허를 관리하고, 방송 내용이 ‘공익·편의·필요’를 충족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FCC는 상업 방송의 자율성을 일정 수준 보장하면서도, 독과점 방지와 공공성 확보를 위한 기준을 마련해 향후 수십 년간 미국 방송정책의 기본틀을 구성하게 된다.

한편, 이 시기의 라디오는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미국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공황 시기 ‘노변담화(Fireside Chats)’를 통해 국민과의 직접 소통에 라디오를 적극 활용했으며, 이는 방송이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3. 제2차 세계대전과 라디오의 전략적 활용 (1940년대 초)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라디오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중요한 전략 매체로 부상했다. 미국이 전쟁에 참전한 1941년 이후, 라디오는 전황을 실시간으로 보도하고, 군사 모집과 전쟁 채권 홍보를 위한 프로파간다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뉴스와 특집 방송, 군인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 등이 연일 송출되었고, 이는 국민의 결속과 전시 동원의 심리적 기반이 되었다.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이용된 라디오방송
프로파간다의 수단으로 이용된 라디오방송

 

CBS의 에드워드 머로는 런던 공습을 생생하게 중계하며 전 세계 청취자들에게 전쟁의 현실을 전달했고, 이러한 보도는 뉴스 저널리즘에서 라디오의 신뢰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미국 정부는 방송사에 일정한 협조를 요구하면서도 검열보다는 자율적인 가이드라인 제공에 집중해, 언론 자유와 국가 안보 사이에서의 균형을 시도했다.

4. 텔레비전의 기술적 진보와 대중화의 시작 (1940년대 후반)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46년, 미국은 경제적 번영 속에서 새로운 기술에 대한 수요가 폭증했고, 그 중심에 텔레비전이 있었다. 텔레비전은 사실 1930년대부터 기술적 실험이 이루어졌지만, 전쟁으로 인해 본격적인 상업 방송은 지연되었다. 그러나 전후에는 RCA, NBC, CBS 등 주요 방송사들이 텔레비전 방송국을 신속히 개설했고, 가정용 텔레비전 수상기 판매도 급증했다.

1948년에는 텔레비전 방송국 수가 급격히 늘면서 미국 사회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진입하게 되었다. 초기에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단순히 영상화한 형태가 많았으나, 곧 텔레비전에 최적화된 포맷의 프로그램들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뉴스, 퀴즈쇼, 코미디,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가 시도되었고, 방송 제작의 질도 빠르게 향상되었다.

5. 텔레비전 황금기의 도래 (1950년대)

1950년대는 미국 텔레비전 방송의 ‘황금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방송 수상기의 대중화와 함께, 텔레비전은 급속도로 국민 생활의 중심에 자리잡았다. 1951년 CBS는 최초의 전국 방송망을 구축했고, NBC는 컬러 방송을 시도하는 등 기술적 진보도 함께 이루어졌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아이 러브 루시」, 「텍사코 스타 시어터」, 「에드 설리번 쇼」 등이 있으며, 이들은 텔레비전이 단순한 정보 전달 수단을 넘어서 문화 소비의 중심이자 사회적 담론 형성의 장으로 기능하게 만들었다. 시청률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방송사들은 점점 더 화려하고 자극적인 콘텐츠 제작에 몰두했고, 이는 이후 상업 방송의 표준이 되었다.

또한, 텔레비전 광고는 기업 마케팅 전략의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황금시간대(Prime Time)’라는 개념이 등장하고, 시청률에 따라 광고 단가가 책정되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방송은 콘텐츠를 제작하고 광고를 파는 산업 구조로 완전히 전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