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연극의 역사
연극은 우리의 삶과 사회를 무대에 반영하며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온 예술이다. 연극은 원래 종교의식에서 출발하였으며, 시간이 흘러 시대와 장소에 따라 변화하며 다양한 형식과 주제를 반영하여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서는 고대 그리스 연극으로부터 현대 연극에 이르기까지 서양 연극의 특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1. 고대 그리스 연극
기원전 5세기경 고대 아테네에서 시작된 종교적인 연극을 서양연극의 기원으로 본다. 이 시기의 연극은 예술적 행위라기 보다는 원시 신앙적인 제사와 같은 행위였다. 다산과 풍요의 신으로 알려진 디오니소스 신을 숭배하고 찬양하는 종교적 신항적 의식에서 전래되었다. 이후 처음으로 배우와 대화를 주고받는 극적 서사 구조를 도입한 이는 테스피스로 알려져 있으며 이를 통해 본격적인 드라마가 탄생했다.
고대 그리스 연극은 크게 비극과 희극으로 나뉜다. 비극은 인간의 운명, 신과 인간의 갈등, 윤리적 선택과 책임 등을 다루며, 대표적인 작가로는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가 있다. 이들은 오이디푸스 왕, 메데이아, 아가멤논 등의 걸작을 남겼다.
고대 그리스의 연극은 반원형 야외극장에서 공연되었으며, 무대 중앙의 오르케스트라에서 합창단이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배우는 가면을 쓰고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연극의 여섯 요소(플롯, 성격, 언어, 사상, 음악, 장면)를 정리하며 서사 구조를 체계화했다.
2. 로마 시대 연극
로마의 연극은 그리스 연극의 형식을 계승하였지만 보다 대중 오락적 성격이 두드러졌다.. 로마 연극의 대표 장르는 희극이었으며, 플라우투스와 테렌티우스가 활약했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희극적인 상황을 주요 소재로 다루며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세네카는 비극 분야에서는 유명했다. 그리스비극의 형식을 추구한 그의 비극은 인간 내면의 갈등과 철학적 사고를 두루며이는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극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인간 내면의 철학적 사고와 고뇌를 다루던 로마의 연극은 점차 검투사 경기와 같은 자극적이고 말초신경적인 오락문화와 접하면서 점차 정통성을 상실해가기 시작한다.
3. 중세 연극
로마시대 이후로 서양 연극은 한동안 침체기를 경험하게 된다. 기독교를 중시하는 가치관 하에서 연극은 세속적이고 이교적인 예술로 간주되어 배척되었다. 그러나 10세기 무렵부터 교회 내에서 전례극(Liturgical Drama)이 등장하면서 연극은 다시 부흥기를 맞이한다.
전례극은 성경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내러티브를 갖춘 형식으로, 점차 교회 밖의 광장에서 공연되기 시작했다. 중세 연극의 대표적인 형식에는 신비극(Mystery Play), 기적극(Miracle Play), 도덕극(Morality Play)이 있다. 도덕극은 인간의 선과 악, 구원과 타락 등 종교적 주제를 상징적인 인물로 풀어낸 형식으로, 대표작에는 『모든 인간(Everyman)』이 있다.
중세 연극은 종교적 가치를 반영한 도덕적 교훈의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이동식 무대나 마차 위에서 공연되기도 했다.
4. 르네상스 연극
14세기부터 시작된 르네상스는 신 중심의 사고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로 전환되는 시기이다. 이런 르네상스적인 사고는 연극 뿐만 아니라 예술 전반에 큰 변화와 각성을 불러왔다. 이탈리아에서는 즉흥극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에는 코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가 있었다. 익살과 신체적 유희를 통해 관객과 호흡하며 즐거움을 추구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영국에서는 엘리자베스 시대가 되면서 연극의 황금기가 도래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극작가는 바로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햄릿』, 『맥베스』, 『로미오와 줄리엣』 등이 있으며, 인간의 복잡한 심리와 갈등을 비극적인 구성으로 표현했다.
프랑스에서는 몰리에르가 풍자 희극의 대가로 활약했으며, 스페인에서는 로페 데 베가, 칼데론이 연극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5. 고전주의와 계몽주의 연극
17세기 프랑스에서는 데카르트의 이성 중심주의와 고전 미학에 영향을 받은 고전주의 연극이 유행했다. 이 시기에는 시간의 일치, 장소의 일치, 행동의 일치라는 ‘삼일치의 법칙'을 강조하였다. 고전주의연극은 구조적으로는 형식적인 규칙을 중시하였으며, 주제적으로는 인간의 이성과 도덕성을 강조했다. 대표 작가로는 비극의 라신, 코르네유, 희극의 몰리에르가 있다.
18세기의 연극은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아 교육적이고 비판적인 도구로 활용되었다. 볼테르와 디드로는 연극을 통해 당시 사회의 도덕적 문제에 대한 통찰과 반성을 전달하고자 했다.
6.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연극
19세기 초에는 고전주의의 규범을 거부하고, 감정과 상상력,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낭만주의가 등장했다. 괴테, 실러, 빅토르 위고 등이 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대표적인 작가였으며 이들이 다룬 주제는 현실적인것 보다는 이상과 열정을 표현하는것들이있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산업화, 도시화와 맞물려 사실주의(Realism)가 연극의 중심으로 자리 잡는다. 사실주의는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사회 문제를 드러내고자 했다. 헨리 입센의 『인형의 집』은 여성의 자아와 사회적 역할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안톤 체홉, 스트린드베리 등도 일상적인 현실 속에서 고뇌하는 인간 내면의 갈등을 네러티브에 탁월하게 담았다.
7. 현대 연극
20세기에는 기존 연극 형식을 해체하거나,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는 다양한 흐름이 등장했다. 표현주의, 부조리극, 서사극, 상호작용극, 포스트모던 연극 등 단순하고 정형화된 이야기 전달이 아닌 철학적, 정치적, 예술적 실험의 장으로 연극의 변화를 시도하게 된다.
브레히트는 관객이 무대에 몰입하기보다는 비판적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하는 서사극을 만들었으며, 사무엘 베케트는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 인간 존재의 불확실성과 공허를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오늘날 연극은 다양한 기술과 융합되어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고 있으며, 성별, 인종, 계급, 정치 등 다양한 사회적 목소리를 담아내는 포용적 예술로 계속 진화하고 있다.
서양 연극의 역사는 인간 내면을 이해하고 세상을 성찰하는 방법을 표현하는 예술 장르의 역사이기도 하다. 고대의 신화에서 시작해 현대의 실험극까지 이어져온 연극은 시대의 고통 속에서 고뇌하는 우리들의 갈등을 직접적으로 반영한 거울이었다.